초등학교 때 성적표 받는 날이면 아빠가 밥상 앞에서 안경을 고쳐 쓰셨다. 수우미양가 옆에 빨간펜으로 동그라미를 치던 그 표정을 아직 기억한다. 지난주에 그 아빠를 모시고 다낭에 다녀왔다. 엄마, 아빠, 남편, 나. 넷이서.

엄마 무릎이 몇 년 전부터 계단을 싫어해서, 수십 명이 버스로 몰려다니는 일정은 처음부터 접었다. 이것저것 알아보다가 넷이서만 차 한 대로 움직이는 단독 일정을 티그룹이라는 곳에 맡겼는데, 다녀와 보니 이번엔 내가 빨간펜을 들 차례다. 7월 말의 다낭 가족여행 3박4일, 과목별로 점수를 매겨봤다.

첫날 오후, 한강변 APEC 공원. 햇볕은 매웠지만 강바람은 시원했다
첫날 오후, 한강변 APEC 공원. 햇볕은 매웠지만 강바람은 시원했다
여행 생활기록부 · 1교시
B+도착과 한강 산책

공항에서 기사님이 이름 적힌 종이를 들고 계셨고, 호텔에 짐만 맡기고 강변으로 나갔다. 다낭에도 한강이 있다. 아빠가 다리를 보시더니 “여기도 한강이네” 하시고는 본인이 제일 크게 웃으셨다. 조각공원이랑 APEC 공원을 천천히 걸었는데 오후 세 시 햇볕이 만만치 않았다. 감점 사유는 순전히 모자를 호텔에 두고 나온 나. 저녁 먹고 들어가서 다들 일찍 뻗었다.

이틀째의 전신마사지 한 시간 — 아빠가 제일 높은 점수를 준 과목
이틀째의 전신마사지 한 시간 — 아빠가 제일 높은 점수를 준 과목
여행 생활기록부 · 2교시
A오행산 · 마사지 · 호이안

산 전체가 대리석이라는 오행산. 엄마 무릎이 걱정돼서 전망대 코스는 남편만 올려보내고 우리는 동굴 쪽 낮은 길로 다녔다. 천장에서 빛이 떨어지는 동굴 안에서 엄마가 한참을 서 계셨다. 계단 몇 개에 허벅지가 후들거린 건 내 문제고. 내려와서 일정에 포함된 전신마사지 한 시간을 받았는데, 아빠가 끝나고 나오시며 “이건 매일 받아야 되는 거 아니냐” 하셨다. 오후에 넘어간 호이안 구시가지는 등불이 켜질 때쯤이 절정이었다. 엄마 사진만 이백 장쯤 찍은 듯하다.

골든브릿지에서는 다들 이렇게 뛰던데, 우리 넷은 무릎 회의 끝에 얌전히 서서 찍었다
골든브릿지에서는 다들 이렇게 뛰던데, 우리 넷은 무릎 회의 끝에 얌전히 서서 찍었다
여행 생활기록부 · 3교시
A+바나힐

셋째 날 오전은 호텔에서 늘어졌다가 바나힐로 올라갔다. 케이블카가 5,800미터, 기네스에 오른 적이 있다는데 20분 내내 창문에서 눈을 못 뗐다. 골든브릿지는 소문대로 사람이 많았다 — 7월 말 방학이니 어쩔 수 없고, 손바닥 끝 쪽에서 차례를 기다리면 사진은 나온다. 점심은 뷔페가 포함이라 든든했고, 프렌치 빌리지는 엄마 아빠가 제일 좋아하셨다. 해발 1,487미터라 시내보다 확실히 선선한 것도 어른들 모시고 가기 좋은 점.

운이 좋으면 이런 구름바다를 만난다고 한다. 우리는 절반쯤 성공
운이 좋으면 이런 구름바다를 만난다고 한다. 우리는 절반쯤 성공

운이 좋으면 구름이 발밑으로 깔린다는데, 우리가 올라간 날은 반쯤 걷혀서 부처님 어깨에 구름이 스카프처럼 걸려 있었다. 판타지 파크에서는 남편과 아빠가 오락기 앞에서 갑자기 진지해졌고, 나는 엄마랑 정원을 걸었다. 내려오는 케이블카에서 아빠가 “성적표 잘 나오겠네” 하셨다. 채점자 매수 시도로 기록해 둔다.

샌즈 오션프론트 객실. 커튼 사이로 아침 빛 들어오는 게 좋았다
샌즈 오션프론트 객실. 커튼 사이로 아침 빛 들어오는 게 좋았다
가정통신문 · 숙소와 경비

숙소는 샌즈 오션프론트에서 3박. 이름대로 바다 앞이고, 아침마다 조식 먹고 창밖을 보는 게 일과였다. 참고로 우리 넷 기준 경비 구조는 이랬다.

지상비 1인 660만동대 — 약 38만원대 (4인 단독 기준)
포함 공항 픽업·샌딩 차량, 가이드, 입장료, 호텔 3박+조식, 전신마사지 1시간
불포함 점심·저녁 식사, 개인 경비
항공 별도 (시즌 따라 편차 큼)

환율이랑 시즌에 따라 달라지니 정확한 건 견적으로 확인하는 게 맞다. 베트남 공휴일에는 요금이 다르다고 했다.

마지막 날 아침, 미케비치의 파라솔들. 위에서 보면 사탕 같다
마지막 날 아침, 미케비치의 파라솔들. 위에서 보면 사탕 같다
종합 성적표
바나힐 A+
전신마사지 1시간 A
호이안 등불 A
부모님 만족도 A+
나의 체력 C+
종합 A  ★★★★☆

마지막 날은 다낭 대성당을 보고 점심을 먹고 공항으로 갔다. 다녀와서 아빠가 사진첩을 두 번 넘겨 보셨으면 그 여행은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부모님 모시고 가는 일정이라면 단체보다 이런 단독 쪽이 확실히 편했다. 우리는 티그룹에 맡겼고, 궁금한 게 있으면 카카오톡에서 @티그룹(pf.kakao.com/_NxovxiT)으로 물어보면 된다.

참, 모자는 꼭 챙기시길. 제 성적표에 유일하게 남은 빨간 줄이 그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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